
지도교수님과 졸업 협상에 성공하고 행정 서류도 무사히 준비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디펜스를 준비할 차례다. 학위 논문 심사는 영어로 디펜스(defense)라고 한다. 내 학위 논문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공격을 방어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나의 학위 논문에 대해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초심/중심/종심 별 준비 방법과 디펜스 팁을 초심 위주로 작성해보려 한다.
1. 디펜스의 3가지 관문 (초심/중심/종심)
석사 디펜스는 1번만 진행하면 되지만, 박사 디펜스는 총 3번의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를 순서대로 각각 초심, 중심, 종심이라 부른다. 세 가지 심사는 모두 내 학위 논문에 대한 발표와 질의응답이 포함되지만, 준비해야 하는 내용은 약간씩 다르다.

초심은 내 학위논문을 심사위원들께 처음으로 보여드리는 자리이므로, 내 학위논문 내용 소개 위주로 발표를 진행한다. 이때 받은 심사위원들의 공격(질문/지적)에 대해 보완해서 중심/종심에서 발표하면 된다. 요즘은 심사위원 분들이 바쁘신 경우 중심은 서류 상 날짜만 기입하고 생략하는 경우가 많지만, FM대로 세 심사 모두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2. 초심 준비 방법
앞서 얘기했듯 초심은 내 학위논문을 심사위원들께 처음 소개하는 자리다. 초심 일주일 전까지 학위논문 초안을 심사위원들께 배부해야 하므로, 학위논문 워드 작성과 발표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한다. 초심에서 잘 준비만 된다면 중심/종심까지의 기한 동안 챌린징한 실험을 보완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실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학위논문은 본인이 학위기간 동안 한 연구 내용을 논문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박사 졸업을 위해 최소 SCI 논문 1편은 1저자로 내야 하므로, 학위 기간 중 게재한 본인의 논문 내용을 상당 부분 발췌하여 쓰곤 한다. (학위논문에 본인이 쓴 논문 figure 및 내용을 그대로 쓰는 것은 언급만 정확히 한다면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학위논문은 일반 저널에 내는 논문과 달리 학위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의 내용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SCI 논문 게재 갯수가 적은 경우). 예를 들자면, “A가 B라는 특성을 가짐을 확인하기 위해 C 실험을 진행했지만 A가 C 기기 검출한계에 맞지 않아 실패했다. C는 이러한 이유로 적합하지 않아, 대체 실험으로 D를 진행해본 결과 B임을 확인했다.”라는 히스토리가 있다고 하자. 일반 저널에서는 “D 실험을 통해 B라는 결과를 얻었다.”만 작성해도 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학위논문에서는 D를 진행하게 된 원인 (C를 시도했던 경험) 또한 내가 학위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므로, 논문 내용에 작성해도 좋다. (물론 발표에서는 이런 모든 자잘한 내용까지는 발표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흐름 상 필요하다면 발표할 수도 있다.)

초심 발표의 경우 학위논문의 내용을 학회에서 논문 발표하듯 발표를 준비하면 된다. 단, 학회 발표와 다른 점이 있다. 학회에서는 내 전공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긴 알겠지만) 잘 모르는 무작위의 사람들에게 발표하는 것이라면, 박사 디펜스는 내 전공 분야의 권위자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다. 따라서 introduction에서 내 전공 분야의 기초적인 설명은 다소 축약해서 발표해도 좋다. 그것보다 내가 학위 기간 동안 어떤 연구를 해왔고, 어떤 결과를 내왔는지, 논문으로 치면 results & discussion의 분량이 더욱 많아야 한다. 발표 분량 20분 중 introduction이 5분이라면 results & discussion이 13분, summary가 2분이면 적절하다.
3. 초심 디펜스 팁
1) 연구실 구성원 앞에서 발표 예행 연습
보통 심사 시간은 30분이라고 하면, 발표를 20분 내외로 끝마치도록 분량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초심 전 친한 연구실 구성원들에게 커피라도 한 잔 사면서 발표 예행 연습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면 좋다. 내가 집에서 혼자 발표 연습을 해볼 때와 청자가 있을 때는 긴장도가 다르기 때문에 발표 시간이 다를 수 있다.

또한 발표 예행 연습을 하며 내 발표의 문제점을 지적받고 예상 질문을 받아보면 혼자 준비할 때보다 더욱 알찬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연구 주제를 가진 구성원들에게 부탁하면 양질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실 구성원에게 초심 질문 기록 부탁하기
초심에서 받은 질문/지적 내용을 중심/종심에서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질문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초심은 보통 공개 심사로 진행되기 때문에, 연구실 구성원들에게 참여하여 본인 발표 후 심사위원들의 질문을 받아적어달라고 부탁하면 좋다. 녹취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좋지만 좋아하지 않는 심사위원들이 계시고, 질문을 받고 해석해서 답변을 하면서 질문 내용을 기록하는 건 혼자서 하기 버겁다.
3) 예상 질문에 대비한 appendix 준비하기
발표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학위논문의 모든 내용을 발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심사위원들께서는 당신의 학위논문에는 작성되어 있지만, 흐름 상 발표에서는 빠진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심사위원들께 미리 초심 초안을 전달드렸어도, 그들은 그 내용을 전부 읽고 오지 않을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발표 ppt 맨 뒤에 appendix를 추가하여 중요도가 낮아 빠진 figure 등을 모아두면, 단순히 말로 그 내용을 설명할 때보다 심사위원들이 당신의 답변에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이 왜 중요하냐면, 당신이 심사위원의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록 꼬리 질문의 갯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중심/종심에서 수정/보완해야 할 부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래의 당신을 위해 초심에서 더욱 단단히 준비해두자.

4) PPT의 디자인과 맞춤법/표기법에도 신경 쓰자
우리의 예비 공학박사들은 그동안 PPT 디자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수 있다. 화려한 디자인, 애니메이션을 넣으라는 말이 아니다. 심플하고 단순하더라도 심사위원들이 ‘어? 거슬리네..?’라고 생각할 여지조차 없애는 것이 좋다. (괜히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자) 많이들 대충 넘어가는 대표적 표기법 오류는 mL 표기다. ’5 mL‘을 ’5 ml‘로 표기하면 안 된다. 리터는 반드시 대문자로 표기해야 한다.
이런 사소한 부분과 더불어 글씨 크기, 자간, 그림간격 등 최대한 일정하고 통일성있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제목 글씨의 위치가 슬라이드마다 약간씩 다르다던지, 설명 글씨의 폰트나 자간이 일정치 않다든지 이런 부분도 조금만 신경써서 맞춰주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심사위원들이 거슬릴 만한 여지를 최대한 없애야 한다. 심사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보니, 특히 박사 디펜스에서는 ‘이 학생은 박사 디펜스인데 mL 표기도 제대로 안 하네? PPT도 엉성하고?’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주변인 중 숫자와 단위 사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 크게 지적받고 디펜스 통과를 못할 뻔한 사람이 있다.)
5) 심사위원 교수님들의 전공 분야 파악하기
누가 뭐래도 나의 학위논문은 내 연구이므로 지도교수님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아야 한다. 당연히 세부 연구분야가 조금씩 다른 타 교수님들은 내 연구분야에 대해 정확히 모르실 수 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각자 본인의 전공분야의 관점에서 질문을 하신다.
가령 나는 암 치료제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하자. 심사위원은 항암 기전 연구와 같이 내 연구분야와 밀접한 전공 분야의 교수님이실 수도 있지만, 유전질환, DNA 서열 분석, 치매치료제 연구 등 세부적인 연구 분야는 다른 분이실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항암 기전에 대해 유전 관점에서 질문을 하실 수도 있고, DNA와 관련된 실험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하실 수도 있다. 심사위원들의 전공 분야를 미리 파악해두고 준비해두면, 질의응답이 보다 수월할 수 있다.
박사 학위 기간 동안 발표와 논문 작성 능력은 수없이 쌓았을 테니 하던대로 준비한다면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드물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디펜스 불합격이 되는 경우도 있다. 본인이 본인 연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본인 연구에 자신감을 가지고 디펜스에 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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