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연구만 하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원이라는 교육 기관에 입학한 이상 수업도 들어야 하고, 논문제출자격시험(a.k.a. 논자시)도 치뤄야 하며, 연구실 관련 행정 업무도 다뤄야 한다. 어떨 때는 연구실에 출근해서 연구보다 그 외 업무를 더 많이 하는 날이 있기도 할 정도로, 대학원에서 연구 외적인 일이 꽤나 잦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도 있다. 구체적으로 이공계 대학원생은 연구 외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는지 알아보자.
1) 수업 및 발표 관련 일
코스웍(Course work) 기간에는 학점을 채우기 위해 혹은 본인 연구에 도움이 되기 위해 (또는 지도교수의 수업이라서) 전공 수업들을 듣는다. 한 학기에 많으면 4 과목, 보통은 2-3 과목을 듣는 듯하다. 학부생일 때에 비하면 굉장히 널널한 시간표지만, 대학원생은 수업 외 시간에 놀기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학기가 시작되면 상당히 시간이 빠듯해지곤 한다. 특히 수업이 오후 2-3시 같이 굉장히 애매한 시간에 있는 경우 실험을 하다가 가기도 애매하고, 뭔가를 안 하기도 애매해 붕 뜨는 시간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인 건 대학원 수업들은 대체로 학부 수업에 비해 '꿀강'이 많다는 것이다. 가령 수업을 수강생들의 발표로 대체하여 8주차만에 한 학기 수업을 끝낸다거나, 강의계획서 상 수업 시간은 3시간이지만 실제로는 1시간 만에 수업이 끝난다거나 하는 식이다. 물론 이런 수업들로만 한 학기를 채우면 연구에도 도움이 안 되고 등록금이 아까우니, 내 연구에 도움이 되는 진짜 전공 수업 1과목과 꿀강 2과목을 섞으면 밸런스가 잘 맞는 듯하다.
이렇게 수강하는 수업에서 발표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진짜 발표는 연구실 내에서 더욱 많이 하게 된다. 연구실마다 다르긴 하나 대체로 1-2주에 한 번씩 본인 연구의 진행 현황을 발표하는 랩 미팅(연구 세미나, 그룹 미팅 등 연구실마다 부르는 이름이 있다)을 진행한다. 보통 한 번에 한 두 명씩 연구의 진행 상황을 연구실 구성원 모두 앞에서 공유하고, 지도교수와 구성원들의 피드백을 받는다. 연구실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한 두명씩 발표하기 때문에 본인의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있는 만큼, 그동안 progress가 분명히 있어야 하며 본인 연구에 대해 자신있게 설명해야 한다.* 추후 논자시나 디펜스 등을 예행연습하는 시간이라고 봐도 된다. 이 외에도 짧게 짧게 실험 진행 현황을 발표하는 팀 미팅, 개인 면담 등 본인 연구에 대해 적게는 지도교수 한 명 앞에서, 많게는 연구실 구성원 모두 앞에서 발표할 일이 많다.
*개인적으로 대학원생들이 가장 멘탈이 많이 갈리는 발표가 아닐까 싶다.
또 대학원에 들어오면 매 학기마다 학회를 한 두번씩 가게 된다. 학회는 관련 분야에서 다른 연구자들이 어떤 연구를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보통 포스터 세션과 구두 발표 세션으로 나뉘는데, 교수님마다 혹은 대학원의 졸업 요건마다 다르긴 하나 보통 대학원을 다니며 한 두번은 포스터나 구두 발표를 하게 된다. 포스터 발표의 경우 학회장 안에 본인 연구를 요약해놓은 포스터를 내걸고 심사위원이나 다른 연구자들이 그 포스터의 내용에 대해 질문하면 대답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구두 발표는 10-1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본인 연구에 대해 발표를 하고, 5분 정도 질의응답을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학회에서의 발표는 포스터든 구두 발표든 연구실 외에서 나를 처음 보는 관련 분야 연구자들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니, 발표를 정성들여 준비해가면 그만큼 얻는 게 많을 것이다.
위와 같이 생각보다 수업을 듣거나 발표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연구도 연구지만 발표를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꽤 소요된다. 연구실마다 다르긴 하나 외국인 학생이 있거나 지도교수가 열의(?)가 넘치는 경우 연구실 내 미팅도 영어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 영어가 친숙하지 않다면 영어로 대본을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는 본인 연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발표는 틈틈히 정성들여 준비하면 좋다. 물론 이 외에도 다른 잡다한 발표가 많지만 연구실 성격에 따라 다르므로 생략하겠다.
2) 연구실 행정 관련 일
연구실 행정은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 행정실과 관련된 행정과 지도교수님(연구실)과 관련된 행정 업무다. 행정실과 관련된 행정 업무는 주로 대학원 내규나 연구실 행정 등과 관련된 업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입학 후 안전교육을 받는다든지, 연구실 내 안전 관리 사항을 점검하고 체크리스트를 행정실 쪽으로 보낸다든지, 장학금이나 회계 관련하여 행정적으로 필요한 서류를 제출한다든지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보통의 연구실 구성원들이 많이 하지는 않고, 주로 연구실 방장(랩장이라고도 함) 혹은 행정/회계 담당이 도맡아 하게 된다. 연구실에 금전적 여유가 있는 경우 회계나 행정 담당 직원을 연구실 내에 두는 경우도 있으나, 많은 연구실에서는 학생들이 맡아서 한다. 연구실 방장은 보통 매 학기 혹은 매 년 중간 연차나 고년차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맡곤 한다. 연구실 구성원들과 지도교수님 또는 행정실과의 주된 커넥션을 담당하는 역할로, 연구실에서 회계나 행정 담당 직원이나 담당학생을 뽑지 않는 경우 방장의 업무는 과중되곤 한다. 또한 지도교수님과 연구실 학생들 사이의 연락망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가능한 방장을 맡지 않는 게 정신과 시간적 여유에 좋지만 마음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
지도교수님(연구실)과 관련된 행정 업무는 랩바랩 수준으로 굉장히 다양하다. 가장 흔한 업무는 과제 계획서 또는 보고서를 쓰는 일이다. 연구실에 연구비를 조달하는 가장 큰 방법은 국가 또는 민간 과제에 선정되는 것이다. 과제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과제 계획서를 쓰고 발표 자료를 준비해야 하며, 선정된 후에는 매 년 어떤 연구를 수행했는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는 굵직한 줄기만 던져주고 대학원생들에게 계획서/보고서를 언제까지 써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기한이 넉넉하지 않아 본인 연구를 제쳐두고 계획서/보고서에 매달려야 하곤 한다.
이 외에도 연구실 관련 행정은 보통 연구실 내부에는 랩 듀티(lab duty)가 있다. 랩 듀티란 연구실 내 공용으로 사용하는 장비 및 비품들의 관리나 주문, 연구실 청소 등에 관한 일을 각자 나누어 맡는 것이다. 수평적인 문화의 연구실이라면 저년차나 고년차가 공평하게 듀티를 선택하겠지만, 수직적인 연구실이라면 고년차가 상대적으로 쉬운 듀티를, 저년차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어려운 듀티를 맡는다. 전자든 후자든 각자의 장단점이 있으니 입학 전 분위기를 보고 미리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연구 외적이긴 하나 연구와 관련된 일이 대부분이다. 다만 회계 처리 등 연구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되는 일도 많은데, 이런 일들에 너무 매몰되거나 연구에 집중하느라 꼭 해야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피해야 한다. 적절히 연구와 행정 업무 간의 밸런스를 잡는 게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대학원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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