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과의 컨택에 성공하여 인턴까지 하게 되었다면 '나 거의 합격 확정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하지만 수련회처럼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연구실 인턴 경험이 합격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지 달라진다. 연구실 인턴 경험은 당신이 연구실을 파악하는 기회도 되지만, 연구실 구성원 및 지도교수도 당신을 파악하는 기회가 된다. 나는 현재 재학 중인 연구실 외에 타 연구실에서 한 달 정도 인턴을 한 경험이 있고, 현재 연구실에서 여러 인턴들을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인턴을 했을 때 좋은 점과 나쁜 점, 그리고 인턴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써보려 한다.
1) 연구실 인턴, 꼭 해야 하는가?
먼저 연구실 인턴 경험이 대학원 합격 여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답은 No다.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이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어서* 등 인턴 경험이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 컨택 면담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인턴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 "그래도 인턴을 하지 않으면, 다른 학생들보다 불리하지 않나요?"라고 물을 수 있다. 이것도 답은 No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연구실 인턴 경험이 합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연구실 인턴을 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무리하면서 인턴을 할 필요는 없다. 본인 스펙이 모자르다면 오히려 그 시간에 영어 성적을 올리거나 전공 공부를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인턴을 할 때는 무급 인턴을 하게 된다. 표면적 이유는 연구실 인턴은 '학생이 배우러 오는 것'이며, 연구비 정책 상 외부 학생에게 인건비를 지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 연구실 인턴의 장단점
대학원 합불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고,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실 인턴 경험을 하면 뭐가 좋을까? 일단 본인이 미래에 다닐 수도 있는 연구실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전공책만 들여다보는 걸로는 체험하기 어려운 실제 연구를 눈앞에서 배우고 직간접적으로 실험도 해보면서 대학원생이 무엇을 하는지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연구 보안 때문에 혹은 '어차피 알려줘봐야 곧 나갈텐데'라는 생각에 알려주기 쉽고 간단한 잡일만 하다 끝날 수도 있으니 인턴을 하면서 많은 실험을 배운다는 기대는 안하는 게 좋다. 물론 이는 연구실과 만나는 사수에 따라 다르다.
실험을 직접 진행해본다는 점보다는 개인적으로 연구실 인턴을 꼭 했으면 하는 이유는 연구실 구성원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교수와의 면담만으로는 알 수 없는 점들(ex. 지도교수의 인성, 연구 지도 능력, 연구실 분위기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가 적성에 맞는가와 못지 않게 지도교수와 연구실 분위기는 당신의 대학원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도교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언급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연구실 분위기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하자면, 연구실 내 지도교수나 선배의 폭언 혹은 왕따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겪는 사례도 많으며 심지어는 상해를 입히려는 사례까지 있었다. 극단적으로 가지 않더라도 연구실은 본인이 월요일부터 금요일(혹은 일요일)까지 앞으로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 생각해보면, 연구실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인턴을 하는데 지도교수의 인성이나 연구실 분위기가 엉망이다 싶으면 빠르게 다른 연구실을 알아보는 게 낫다. 인턴을 안했다고 불합격하는 게 아닌 것처럼, 인턴을 했다고 꼭 그 연구실에 가야 하는 법도 없다.
추가로 인턴을 하면서 연구실 구성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해당 대학원 합격에 유용한 정보도 받을 수 있다. 현재 재학 중인 연구실에서 여러 인턴을 보면서 '아 이 친구는 꼭 합격해서 같이 연구했으면 좋겠다' 싶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친구들에게는 뭐라도 더 도와주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인턴을 했을 적에도 해당 대학원의 면접에 관한 정보가 정말 1도 없었는데, 연구실 선배들로부터 면접 정보나 팁 등을 받았는데 면접 당시 그 정보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되어 해당 대학원 입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장점도 많지만 연구실 인턴을 하는 데에는 단점도 있다. 우선 대학 자체의 공식적인 인턴 프로그램*이 아닌 지도교수와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턴은 대부분 인건비를 받기 힘들며, 타 지역일 경우 거주지를 구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만약 인턴 기간 동안 생활비와 거주지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 점은 굳이 단점이 되지 않을 듯하다.
*UST의 경우 방학마다 연구인턴십 프로그램으로 활동비를 지급해준다.
더불어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연구실 인턴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지도교수를 포함하여 연구실 구성원들은 인턴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것이다. 인턴을 하면서 연구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떨어지거나 인격적인 부분에서 결격 사유가 보이면 대학원에 합격하더라도 해당 연구실에서 뽑아주지 않을 수 있다. 지도교수께만 잘 보이면 되지 않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연구실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연구실 구성원들과 어떻게 생활하는지, 연구를 배우는 자세는 어떤지 등 지도교수가 연구실 구성원들에게 어떤 사람인지 의견을 묻고 이를 적극 반영하는 연구실들도 있다.
3) 연구실 인턴 시 Dos and Don'ts
연구실 인턴 경험이 독이 아닌 득이 되도록 하려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한 번 참고하고 인턴 생활을 하면 좋을 듯하다.
해야 할 것의 가장 기본은 '인사'다. 연구실 출근할 때와 누군가 들어올 때 안녕하세요, 연구실 퇴근할 때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딱 두 마디만 하면 된다. 요즘에는 '꼭 인사를 아랫사람이 먼저 해야 하나요? 개인주의 사회인데 인사 꼭 해야 하나요?'라며 인사의 필요성에 대한 이상한 인터넷 발 문화가 형성되는 듯 한데, 연구실 인턴하면서 실험 혼자 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공부하고 싶다면 인사 안 해도 된다. 연구실 구성원들은 생각보다 인턴에게 많은 관심을 쏟거나 챙겨주지 않는다. 다들 본인 연구가 있고, 실험 스케줄이 다르면 밥도 따로 먹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사조차 하지 않으면 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뭘 하기는 한 건지 아무도 모른다. 단순히 '인턴 경력'을 원한다면 조용히 있다가 가도 상관없지만, 연구실 구성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뭐라도 하나 더 배워 가려면 그 기본은 인사에서 시작한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정말 내성적이어서 인사를 못하겠다 싶어도, 적어도 출근할 때 고개라도 꾸벅하고 나갈 때 꾸벅하고 나가자. 특히 사수에게는 반드시 눈 마주치며 인사하자.. 제발..
보통 인턴은 교수가 연구실 학생들 중 한 명을 사수로 지정해주고 인턴 기간 동안 사수의 연구와 관련된 간단한 실험을 배우는 식으로 진행된다. 나중에 입학하고나서 보면 한 달이면 익숙해질 실험들이지만, 처음 하게 되면 낯선 내용들을 처음 배우기 때문에 한 번 배우고서는 디테일한 부분들은 특히 잘 잊어먹기 쉽다. 모든 사람이 한 번 배우고 완벽하게 해내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아마 사수도 실험을 옆에서 봐주거나 두 세번 알려주곤 할 것이다. 하지만 사수도 본인 연구가 있어서 항상 실험을 봐줄 수는 없고, 때때로 너무 바빠서 한 번만 알려주고 다음부터는 알아서 해보고 모르면 물어보라는 식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처음 실험을 배울 때 사소한 것 하나하나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고, 허락을 받는다면 영상이나 녹음을 해서라도 꼼꼼히 실험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다. 가르쳐주는 사람 입장에서 한 번 알려줄 때 뒷짐 지고 쳐다만 보다가 여러 번 물어보는 사람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메모하고 정리하고 혼자 해보려다가 물어보는 사람에게 더 자세히 알려주고 싶기 마련이다.
이와 유사하게 사수가 알려주는 실험만 하기 보다는 본인이 이 실험은 왜 하는지,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실험인지 등 논문도 찾아보고 사수에게 여쭤보며 먼저 배우려는 자세를 보여주면 좋다. 예를 들어 바이오 분야에서는 굉장히 흔한 실험인 MTT assay를 배운다고 해보자. MTT assay는 cell viability를 측정하는 assay 방법 중 하나로 사수가 실험의 원리나 의의를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cell viability를 측정하기 위해 이런 protocol로 MTT assay를 하는구나'에 그치지 않고 assay의 원리는 무엇인지, 실험 결과를 통해 연구에서 무엇을 보여주는지 검색도 해보고 다른 논문들도 찾아보면 실험이 훨씬 더 잘 이해될 것이다. 또한 인턴 경험 동안 배운 실험은 사수와 똑같이 한다고 생각해도 디테일한 부분에서 실수를 하거나 서툴러서 결과가 잘 안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실험에 관해 스스로 왜 그랬을지 생각해보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습관은 추후 대학원생이 되더라도 매우 도움이 되는 습관이다.
반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 예고 없이 지각하거나 결근하는 경우, 혹은 상습적으로 지각 혹은 결근하는 경우는 길게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임을 알 듯하다. 이게 꼭 30분, 1시간 넘게 지각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출근을 9시까지 하라고 했는데 상습적으로 9시 2분, 4분, 10분 이렇게 늦게 출근하는 걸 연구실 구성원들이 대놓고 말은 안 하겠지만 뒤에서는 '쟤는 왜 자꾸 저렇게 늦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연구실 분위기 파악도 매우 중요하다. 화목한 연구실도 많지만 연구실 내 파벌이 있다거나, 사이가 안 좋아서 연구실 구성원을 뒷담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실 구성원들과 밥을 먹거나 하면서 small talk에 섞이는 건 좋지만 뒷담화에 동참하거나 특정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건 피하는 게 좋다. 한 예를 들려주겠다. 연구 주제가 크게 A, B 두 개인 연구실에 인턴이 들어와 A 연구를 배웠는데, 이 연구실은 A 연구를 하는 사람들과 B 연구를 하는 사람들 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연구실이었다. 인턴은 자연스레 A 연구자들과 친해지면서 A 연구자들만 어울리다가 인턴이 끝났는데, 대학원 합격 후 교수가 B 연구를 배정해주었다. B 연구자들은 해당 학생이 인턴 시절 A 연구자들과만 어울렸음을 알기에 텃세를 부리고 실험을 잘 알려주지 않았다. 해당 학생은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고 한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긴 하지만 실제로 주변 연구실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생각보다 이런 연구실 내 파벌이 많이 존재한다고 한다. 인턴을 하며 배우는 연구 주제와 대학원 합격 후 배우는 연구 주제는 다를 수 있고, 인턴 때의 사수와 대학원 합격 후 사수가 달라질 수 있으니 모두에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되 좋은 인상을 남기려 하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여러 번 알려준 내용을 기억을 못한다거나, 실험 데이터를 분실하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반드시 메모든 사진이든 알려줄 때 기록하기 바란다. '기억할 수 있겠지'하고 쳐다만 보다가 나중에 기억 못해서 여러 번 물어보면 가르쳐준 사람 입장에서는 시간 뺏기고 답답한 게 당연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여러 번 계속 알려줘야 하는 사람을 부사수로 두고 싶을까? 기억력이 안 좋으면 기록을 해서 기억하려는 의지라도 비추길 바란다.
인턴을 하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찌 보면 사회생활(?)에서도 통용되는 얘기다. 기본만 지킨다면 인턴 경험이 독이 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연구실 인턴을 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기간이 적당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짧으면 한 달, 길어도 두 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두 달 정도면 연구실에 대해 파악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인턴 기간 동안 더 많이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합격한 후에 배우자. 어차피 n년 동안 지겹도록 할 연구다. 아무튼 연구실 인턴을 하면서 부디 즐거운 기억만 가지고 대학원에 대한 환상이 더 커지길(?) 바란다.
이제 대학원 입학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글은 대학원 입학의 마지막 관문의 시작, 대학원 입학 원서 제출에 관해 쓰려 한다. 지원 동기, 자기 소개, 연구 계획 등 어떻게 서술하면 좋은지 다양한 팁을 나눠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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